서영애 대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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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06-05 00:27 조회 252회 댓글 0건본문
최초 여성지원장, 최초 여성수석부장장 등 ‘최초’와 ‘여성’으로 늘 주목받아

▲ 서영애 (87.법학)
1994 사법시험합격(26기)
1997 창원지법 진주지원 판사
2021 대구지법 부장판사
2023 대구지법 수석부장 판사
모교 법학과 87학번인 서 동문은 지난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26기를 거쳐 26년째 판사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 2월 대구지방법원 수석부장 판사에 발탁된 서 동문은 1997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창원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서 동문은 대구지방법원 개원 이래 최초의 여성 수석부장 판사로 이목을 집중시켰고, 지난 2019년부터도 대구지법 포항지원 첫 여성 지원장으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평소 온화한 성품에다 성실하고 공정한 재판으로 법원이 국민적 신뢰받는 일에 몰두해 법조계 안팎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서 동문의 남편도 모교를 졸업한 현직 변호사여서 법조 부부 동문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법원에 근무한 지 26년째로 어느새 원로대열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능력와 경륜을 인정받아 대구지방법원 수석부장 판사에 발탁됐는데 개인적인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1997년 법관으로 임용되어 법원에 근무한 지 올해로 26년째이고 아직 원로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합니다. 올해 2월에 대구법원 수석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능력에 비하여 과분한 직책을 맡게 되어 부담스럽고, 수석부장으로서의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늘 걱정이 많습니다.
수석부장 판사는 일반 법관의 업무와 다른 면이 어떤 게 있습니까?
법원의 수석부장은 법원장을 보좌하여 법원의 각종 행정업무를 담당합니다. 예들 들어, 각종 행사 주관과 각종 위원회 위원장, 법관·재판연구원의 사무 분담, 법관에 대한 사건 배당, 법관·재판연구원들의 근무상황 관리 및 근무평정 그리고 각종 감사 준비입니다. 대구에는 아직 회생법원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수석부장은 기업회생과 기업파산사건 재판도 담당합니다.
서 동문은 대구법원에서 항상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요.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제가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합격생 300명 중에 여성 합격자가 30명 정도 나오자 ‘드디어 사법시험에서도 여성 합격자가 10%나 나왔다’며 크게 화제가 되었고 언론에서 여자 연수생들을 인터뷰하고 특집기사를 내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26기로 수료하고 법관으로 임용될 당시에도 여성 법관이 많지 않아 최초 여성지원장, 최초 여성수석부장, 최초 여성선거관리위원장 등 ‘최초’와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초’나 ‘여성’을 이유로 주목받는 일에는 익숙해졌지만, 주목을 받는 만큼 늘 처신에 조심하고 있습니다. 여성 법관이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거나 법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 동문이 판사로 임용된 때와 비교하면 현재 남, 녀의 사회적 지위와 인식은 엄청나게 변하고 개선됐어요. 그래도 여성 법조인으로서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제가 처음 법관으로 임용될 무렵에는 대구법원에 여성 법관이 2, 3명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지금은 전체 법관 100여 명 중에 여성 법관이 40명에 이를 정도로 그동안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이 늘었고 사회적 지위와 인식도 그만큼 변했습니다.
여성 법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에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가진 모든 여성이 겪는 것처럼 여성 법관도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는 많습니다.
모든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법관으로 처음 임용되어 업무를 익히고 경력을 쌓는 기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이 대개 출산, 육아 기간과 겹치다 보니 육아휴직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로스쿨로 전환되면서 법조인 양산 시대를 맞았는데, 새로 법조인으로 진입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변호사시험제도가 실시된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로스쿨, 변호사시험 출신 법조인들은 매사에 성실하고 적극적이며 도전정신도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무경험이 일천 하다 보니 변호사로서 활동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 실수도 하지만, 다들 자질이 우수한 분들이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업무적으로도 곧 익숙해져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법조 선배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소탐대실’을 명심하시어 너무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법률 지식이나 다양한 사회현상 공부를 계속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고 노동, 조세, 환경, 인공지능, 상거래 등 무엇이든 좋으니 자신의 전문 분야를 하나씩 만들어 가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26년 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 있었던 사건이나 사람을 소개해 주시죠.
조정이나 화해를 통해서 당사자들이 원만하게 합의하고 만족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잘 해결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보람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파장을 생각하면 대부분 사건의 경우 법관들은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뿐 아니라 판결을 선고한 이후에도 자신이 내린 결론이 맞는지 계속 고심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잘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사건보다는 제대로 재판한 것인지 마음에 걸리는 사건들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가정법원에서 이혼 사건 재판을 하면서 겪은 사건입니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남, 녀가 결혼해 아들(당시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기였습니다)을 출산하였는데 불화가 생겨 이혼 청구를 하였습니다. 쌍방이 이혼에는 동의하지만,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에 대해서 서로 격렬히 다투고 있었는데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녀 조부모에게 양육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사조사관의 조사 결과 주거환경, 경제적인 여건 등은 엄마 쪽이 다소 나은 상태였지만 직장생활을 하던 외조모는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어 하셨고 반면에, 전업주부이던 친조모는 장손인 아기를 자신이 직접 양육하겠다는 의사가 확고하였습니다.
대개 어린 아기들의 경우 엄마를 양육자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은 주된 양육자는 조부모일 거고, 친조모가 양육하는 것이 아기에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 고심 끝에 친권자 및 양육자를 아빠로 정하는 내용으로 재판했습니다.
재판 결과를 듣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엄마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는데 불과 몇 달 후에 그 부부가 친권자 및 양육자 변경신청을 했습니다. 아빠가 재혼을 하게 되었으니 친권자 및 양육자를 엄마로 변경해 달라는 내용이었지요.
친권자 및 양육자를 엄마로 변경하는 재판을 한 후 아이 엄마에게 사과했습니다. ‘아이에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해서 아빠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정했는데, 불과 몇달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아이랑 엄마에게 그동안 마음고생을 시켜 너무 미안하다’고 하니 아이 엄마는 ‘괜찮다고, 판사님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 며 웃어 주었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사람이 얼마나 쉽게 입장을 바꿀 수 있는지, 고심해서 결정하더라도 반드시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새삼 재판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한 사건 기억으로 남습니다.
영남대 동문으로서 평소 모교를 생각해 온 소회가 있는가요?
모교인 영남대학교에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사법시험도 학교의 배려 덕분에 학교 고시원에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혜택을 입었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모교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학교의 발전에 기여할 방법이 있는지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주위 분들의 도움과 배려를 받는 삶을 살았던 것에 감사하고 이제 보답할 수 방법이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